남산이 북산을 보며 웃네 - 역사 속으로 찾아가는 죽음 기행 : 맹란자
제3장 죽음과의 악수
인간의 삶과 수명
우리가 믿어왔던 정명의 개념은 이제 흔들리고 있다. 유전공학의 발전으로 생명복제까지 가능하게 된 지금 수명의 길이를 논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의미없는 일이 될런지도 모르겠으나 나로서는 사실 그렇지만도 않다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역사를 주도하며 자기분야에서 무언가를 이룩해 낸 사람들의 업적을 보면 그 자신의 수명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우선 소크라테스와 칸트는 오래 살았다. 괴테와 톨스토이는 같은 해에 태어나 나란히 83세까지 살았다. 이들의 학문과 작품은 80년이란 그들의 인생을 담보로 하여 가능하였던 것이 아닐까 싶다. 방종했던 젊은 시절을 극복하고 거룩한 톨스토이적 휴머니즘을 완성한 것도 그가 오래 살았기 때문이며, 괴테는 파우스트를 쓰기위해 생명을 연장시켜 달라고 신에게 빌기까지 한 실화를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사고력을 필요로 하는 정신적인 업적은 우선 폭넓은 경험을 바탕으로 한 외길 인생을 끊임없이 요구한다. 그래서 대기는 만성으로 이어진다. 동양의 철학자, 석가, 노자, 맹자는 80년을 넘게 살았고 공자, 주자, 장자는 70년을 넘게 살았다. 그런가하면 서양의 홉스, 죤 듀이, 슈바이처, 러셀, 버나드쇼는 90을 넘겨 살았고 야스퍼스, 칼 융은 86세, 하이데거, 마틴부버, 에리히 프롬은 87세를 살았다. 비교적 오성을 중요시하는 철학에 관련된 사람들은 위와 같이 오래 살았다. 고승들의 경우도 매 한가지이다. 그들 모두는 장수하였다. 반면 감성적 유형 예술가들은 천수를 온전히 누리지 못했다. 희랍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시나 미술에 뛰어난 예술가들은 왜 항상 우울한가. 라는 문제를 제기한 이후, 수많은 심리학자나 신경학자들은 창조성과 광기에 대한 상관관계를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미국 켄터키의대 심리학 교수인 아놀드 루드웍박사는 조울증이 가장 심했던 집단은 예술가 집단이었으며 알코올 중독은 조사대상의 60%가 배우, 41%가 작가들이었으며 과학자들은 3% 뿐이라고 말했다. 또한 심리상태가 불안한 환자는 배우가 17%, 시인들인 13%, 과학자들은 1% 미만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조울증의 정도에 따라 작가들의 창작성에도 차이를 보였는데, 세계의 뛰어난 창작자들은 조울증에 걸린 사람들이 많았다는 게 홉킨스대학의 케이레드필드 제미슨 박사의 주장이다. 예술가들의 심리상태를 연구한 제미슨 박사는 자신의 저서 <우울증과 예술성>에서 시인 바이런과 셀리, 음악가 슈만, 소설가 허먼멜빌과 버지니아 울프 등을 예로 들고 있다. 그들은 제 명대로 살 수가 없었다. 노벨 문학상을 받고 자살한 헤밍웨이와 가와바다야스나리. 한 사람은 사냥총으로 또 한 사람은 가스관을 입에 물고 죽어 있었다. 반 고흐와 클라이스트의 권총자살, 우리 나라의 시인 이장희, 김소월, 일본의 아꾸다가와류노스께는 약을 먹었고, 미시마유끼오는 할복자살을 하였다. 디자이오사무, 버지니아 울프, 셀리 그리고 이백과 굴원, 등왕각 서문을 쓴 왕발은 물에 빠져 죽었다. 셀리, 에밀리브론테, 김소월, 이상, 왕발, 이시카와타보쿠는 20대에 죽었고 손상기, 모딜리아니, 로트렉, 라파엘, 슈베르트, 모차르트, 쇼팽, 바이런, 랭보, 비용, 이효석, 나운규, 아꾸다가와류노스께는 30대에 죽었다. 모파상, 보드레르, 훨덜린, 모파상, 로트렉과 고흐는 정신병원에 감금되어야 했다. 상아탑에서 학문을 연찬하고 학생을 가르치는 학자들의 삶이 잔잔하고 안온했다면, 온몸으로 분출하듯 작품을 쏟아내어야 하는 예술가들의 삶은 난파된 배처럼 되어 종래에는 만신창이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특히 예술분야에 있어서 일차 생산에 직접 관련된 예술가들의 생애가 좀 더 비참하고 또한 단명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한 차이를 더욱 느낄 수 있게 되었던 것은 음악가들의 삶을 재조명해 보면서이다. 지휘자나 연주가들은 자신이 연주하고 있는 음악을 작곡한 작곡가보다 훨씬 건강하게 오래 산 것으로 나타났다. 개중에는 시벨리우스나 생상스, 베르디같은 장수자도 혹간 있긴 했으나 슈베르트, 모차르트, 멘델스존, 쇼팽, 비제, 거슈인 같은 사람은 아까운 나이 30대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베버는 40세에, 무쏘르스키는 42세에, 슈만은 46세에, 차이코프스키와 베토벤, 드비시, 파가니니는 50대에 죽고 말았다. 반면 첼로의 거장 카잘스는 96세까지 살았고, 피아니스트 호로비츠는 85세, 호르쇼브스키는 100살까지 살았다. 바이올리니스트 야샤하이휏츠는 85세, 요세프시게티는 81세, 오르가니스트인 라인캔은 99세, 샤를마리비도른는 93세까지 살았다. 장수한 음악가들은 지휘자들 쪽에 더 많았다. 런던 필하모니를 창설한 영국의 지휘자 조지스마트는 90세, 알렉산드르디코노비치는 91세, 부르노발터는 86세, 피에르몽테는 89세, 러시아의 지휘자 예프게니므라빈스키는 86세, 로베르트슈톨츠는 94세, 프랑수아조세포고세크는 95세, 미국의 유명한 지휘자 레오폴드스토코프스키는 95세, 베를린필하모니의 지휘자였던 카라얀은 89세, 뉴욕필의 상임지휘자였던 레너드번스타인은 72세의 나이로 우리의 곁을 떠났다. 반세기 동안 영국의 데카 사와 전속계약을 맺고 있는 헝가리 태생의 지휘자 게오르그솔티경(주 : 게오르그솔티는 이 책이 탈고 될 무렵 1997년에 세상을 떠났기에 바로잡음.)은 84세의 나이로 여전히 건강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에게 건강비결을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일은 하는 것이다. 일하는 인생은 아름답다. 무엇보다 지휘란 심폐기능을 단련시키는 스포츠와 다름없다. 그리고 지휘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을 묻는 말에 그는 음악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것. 이라고 하였다. 지휘자의 장수에 대한 단서를 솔티는 여기에서 제공하고 있다. 아름다운 리듬을 타고 남과 나에게 다같이 기쁨을 주는 일, 그리고 턱시도 밑으로 흘러내리는 땀, 그 정열의 발산, 심폐기능이 단련되는 스포츠 란 말에 다시 한번 주목해야 될 것 같다. 첼로의 거장 카잘스는 또 이렇게 말했다. 가능한 한 몸의 힘을 빼고, 손발을 자유롭게 움직여 손발 자체가 지닌 무게와 그 낙하력을 이용함으로써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었다. 나에게 있어서 연주라는 일은 즐거움이 되었던 것이다. 우리에게는 그렇게 어렵게만 보였던 일이 즐거움이었다고 고백한 말에는 다시 한번 주목해야 될 것같다. 즐거움과 운동, 이것이 그들의 장수의 비결이었다면 밀폐된 공간에서의 영양실조와 운동부족 그리고 창작의 고통으로 인한 노심초사. 문자 그대로 마음을 괴롭히고 애를 태우며 생각을 끓이니 어찌 수명을 온전히 누릴 수 있었겠는가? 그러니 우리가 마음을 쓰는 일과 수명은 정직한 결과로 나타났던 것이다. 어떤 일에 관련되어져 있는가? 그것이 우리의 수명과도 깊은 상관관계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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