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와 의형(義兄)은 공자 주우의 부중에 출근하며 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좌붕 노인은 사내의 말을 잘랐다.
"7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이유가 뭔가?"
사내는 힘없는 말투로 대답했다.
"의형(義兄)께서 자리를 잡고 가족을 그리워합니다. 그런데 의형은 업무가 많아 자리를 비울 수가 없어 제가 대신 이렇게 온 것입니다."
'안 될 말이다.'
어린 손자를 떠나 보내기도 싫으려니와 더구나 관씨 사위가 미덥지 못했다. 좌붕 노인은 될 수 있으면 상대의 제안을 거절하고 싶었다. 노년에 다가온 이 작은 행복을 결코 잃고 싶지가 않았던 것이다. 좌붕 노인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좋은 일이네만....... 이오가 철들기 전까지는 안 되겠네. 그리고 확실히 해둘 것은 다음번에 올 때는 자네 혼자가 아니라 두 사람이 함께 와야지 허락할 걸세. 알겠는가."
그러나 사내는 무릎걸음을 치면서 애원하듯 말했다.
"사돈 어른, 의형은 지금 몹시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족을 모셔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
좌붕 노인은 뭐라고 답변하기가 난처했다. 사실 출가 외인이니 시집 간 딸이 외손자를 데리고 친정에 와 있다가 남편에게로 돌아간다는 일은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노년에 이르러 이제 정이 붙고 철들기 시작한 손자와 헤어져야 했다니....... 사내는 더 한층 목소리를 낮추어서 은근하게 좌붕 노인을 설득했다.
"이오의 나이도 벌써 여덟 살이 되었으니 아버지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제부터는 대처에 나가 학문도 익혀야 하겠고 말입니다."
좌붕 노인은 속으로 이러면 안 되는데,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상대의 교묘한 화술에 딱 잘라 대답할 수가 없었다. 좌붕 노인은 어떻게 하면 이 사내의 요구를 거절할 수 있을까 하고 궁리했다. 그러나 사내의 교묘한 설득에 넘어갔는지 딸은 남편을 찾아가고 싶어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그런 낌새를 모를 좌붕 노인이 아니었다. 마침내 좌붕 노인은 쓴웃음을 지으며 참아왔던 서글픈 심정으로 말했다.
"나는 딸애와 손자 녀석을 이 곳에서 떠나 보내고 싶은 심정이 아니오. 허지만 내가 앞으로 몇십 년을 더 살 것도 아니고 또, 이 시골에 앞길이 구만 리 같은 손자를 묶어 둘 수도 없는 일이니 그 대의 말을 받아들이는 것이오. 내 한마디 꼭 덧붙인다면 오래 전 선친께서 남긴 유훈(遺訓)이 있소. 이를 사위와 그대에게 주려오. 그리고 장차 우리 이오가 나이 들어 벼슬길에 나아갈 시기가 되면 계속 전해 귀감이 되도록 해주시오." 말을 마친 좌붕 노인은 한 장의 죽간을 내놓았다.
그 내용은 이러했다.
ㅡ 대장부는 경솔히 몸을 맡기면 안 되느니라. 높은 벼슬이든 낮은 벼슬이든 벼슬을 살다가 그 임금을 버리면 불충(不忠)한 자가 되며, 못난 임금과 함께 고생을 끝까지 한다면 이는 현명(賢明)하지 못한 자가 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