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로 읽는 사마천 사기 3 - 엄광용 엮음
나라 밖의 일은 출전한 장수에게 맡겨라 <풍당>
-"옛날에는 왕자가 전쟁터로 장군을 내보낼 때 무릎을 꿇고 수레바퀴를 밀어주며 '국내의 일은 과인이 잘 다스릴테니 바깥일은 장군이 모든 것을 알아서 처리하시오'하고 말했다고 합니다."-
조나라출신인 풍당은 한나라 문제를 섬겼다. 그는 중랑서장이었는데, 나이가 많았다. 어느 날 문제는 풍당과 명장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조나라출신이라니 조나라명장 이제에 대해 알겠구려?"
"네! 조부가 조나라 장수였기 때문에 이제와 친분이 있어 그에 관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염파나 이목 장군만 못합니다."
풍당은 그러면서 문제에게 염파와 이목이 훌륭한 명장이라는 사실을 자세히 설명하였다.
"아아, 짐은 어찌하여 염파와 이목 같은 명장을 얻지 못하였을까?"
문제가 한탄을 하였다.
"폐하께서는 염파나 이목 같은 장군을 얻더라도 중히 쓰시지 못할 것입니다."
풍당의 말에 문제는 화가 났다. 꽤 오랜 시일이 지난 후에도 문제는 풍당의 말이 괘씸하게 생각되었다. 그래서 그를 궁궐로 불러 꾸짖었다.
"그대는 어째서 전날 많은 사람이 있는 가운데 짐을 모욕했는가? 내가 어찌 염파와 이목 같은 장군을 얻더라도 중히 쓰지 못한단 말인가?"
풍당이 사과하여 말하였다.
"제가 예의를 몰랐습니다. 용서하십시오."
그러자 문제가 노기를 풀고 목소리를 가다듬어 말하였다.
"이제 다시 묻겠소. 그대는 짐이 어째서 염파나 이목 같은 명장을 부리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시오?"
풍당은 자세를 고치고 대답하였다.
"모름지기 장군이 전쟁터에 나갈 때, 군주는 전쟁터에서의 모든 일을 일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왕자가 전쟁터로 장군을 내보낼 때 무릎을 꿇고 수레바퀴를 밀어주며 '국내의 일은 과인이 잘 다스릴테니 나라 바깥일은 장군이 모든 것을 알아서 처리하시오'하고 말했답니다. 즉 일체의 군공이나 작위 수여나 논공행상도 장군의 결정에 따랐던 것입니다. 그리고 장군은 이겨서 돌아오는 것만을 군주에게 보여주면 되었다고 합니다. 이목이 조나라장수로 변방에 주둔하였을 때, 주둔지의 조세를 모두 그의 임의대로 사용하여 사졸들을 배불리 먹였으며, 상을 내리는 것도 그 자리에서 결정하여 조정의 간섭을 일절 받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목은 북으로 흉노의 선우를 내쫓았으며, 동으로는 동호를 공격하여 담림을 멸망시키고, 서쪽으로는 강대한 진나라를 누르고, 남쪽으로는 한, 위를 묶어버렸습니다."
"들으니, 그것은 참으로 옳은 이야기요."
문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폐하께서는 최근 운중 태수 위상에게 벌을 내리신 일이 있지 않으십니까?"
풍당이 따지듯이 물었다.
"그런 일이 있긴 하지만, 거기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오."
"제가 들으니, 위상은 운중군의 태수가 되면서 주둔지 조세를 모조리 털어 사졸들에게 먹이고, 자신에게 지급되는 사양전으로 닷새마다 한 번씩 소를 잡아 빈객과 군리와 사인들을 대접했다고 합니다. 흉노들이 딱 한번 쳐들어온 적이 있었으나, 위상은 사기충천한 군사들을 이끌고 나가 적의 목을 부지기수로 베었습니다. 대체로 이들 군사들은 변방의 민간인 자제들로 무식합니다. 하루 종일 분전하여 적의 목을 베거나 포로를 잡으면 그뿐이지, 공적을 크게 따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공적을 기록하여 군감부로 보낼 때 숫자가 잘 맞지 않는다 하여, 조정에서는 생트집을 잡아 위상에게 법적으로 제재를 가했습니다. 따라서 그 공로에 대한 은상도 취소되었습니다."
"허어, 짐은 그런 자세한 내막을 몰랐구려."
"저의 어리석은 생각으로 볼 때 폐하의 법은 지나치게 밝고, 상은 지나치게 가벼우며, 벌은 지나치게 무겁습니다. 운중 태수의 위상이 전공을 보고할 때 오랑캐의 머리 여섯이 틀린다하여 폐하께서는 그의 작위를 빼앗았고, 그를 처벌하여 징역을 시켰습니다. 저는 이러한 것을 보고 폐하가 염파나 이목 같은 명장을 얻더라도 부릴 수 없다고 감히 말한 것입니다."
풍당의 말을 다 듣고 난 문제는 크게 놀랐다. 그리고 풍당의 충언을 감사하게 생각하였다. 문제는 즉시 풍당으로 하여금 황제의 부절을 가지고 가서 위상을 사면케 함과 동시에, 다시 그를 운중의 태수로 명하였다. 풍당도 거기도위로 명하여 중위를 관장케 하였다.
믿음 : 일을 진행하다 보면 조그만 실수도 생길 수 있는 법이다. 조그만 실수조차도 처벌한다면 믿음이 생길 수 없고, 일이 제대로 진행될 수도 없다. 타인에게 일을 맡겼으면 끝까지 그를 믿고 그의 판단을 존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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