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도기
詩 / 윤영환
왼손에 면도기를 들고
오른손으로 비누칠한다
사각사각 깎여 나가는 것이
나뭇잎에 가려진 암자를 찾은
행자의 시작처럼
새롭다
지은 죄들의 종착지가 수염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만
다시 자라나는 수염이라 싫다
늘 비집고 기어 나오는 수염은
면도기를 두려워하지 않는가 보다
어디서 저런 용기가 나올까?
의미 없이
느낌 없이
늘 비집고 기어 나오는 나의 죄는
면도기로도 깎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