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릉 장터에서 - 정형석(鄭炯錫)
십여 년 전만 해도 은성탄광 문 닫기 전
사 구일 장날이면 어깨 치며 지났는데
시방은 눈 설레만 치는 허기진 퀭한 장터
나주에서 온 섭이네 밀양 댁 당진 아저씨
뿌리 뽑힌 숨결들이 꾸역꾸역 밀려와서
하늘을 두 번 이고 산 막장 인생 그들은
낯익은 고향이랍시고 송곳 꽂을 땅뙈기 없어
고만 고만한 새끼들 짠하게 앞이 밟혀
먹뱅이 기적소리에 얹혀 홀씨 되어 날려 왔다
동전 짝 하늘 보고 푸념만 할 수 없어
음양 비낀 지하막장 개미굴 두더지는
폐 속에 돌멍이만 담은 무늬만 좋은 산업역군
안도 밖도 까만 밤을 사이렌 소리 흩어놓고
옥녀봉 눈썹위로 우유 빛 햇귀 부려놓을 즈음
성냥 곽 판자 집 사택, 제비집처럼 부산했다
왁자지껄 도탄교 길 보름치 봉급날은
상주 집 석쇠 갚은 돼지기름 으르렁대고
헛기침 객기에 실려 색시 화장 짙어갔지
비루먹은 강아지도 낙엽은 시답잖아
진녹색 독이 오른 배춧잎만 물고 다니고
시장 통 술집 다방은 휘청대며 기대섰다
주판알 이해타산, 솜뭉치 육신들로
신사 갱 하품하고 가은선마저 주저앉자
창백한 폐탄 더미 위 떨고 선 망초꽃들
떠날 사람 떠나가고 갈 수 없어 남은 사람
흙바람 부는 왕릉장터 머쓱하게 어정대다
깡 소주 탁배기 한 잔에 가을 해를 삼킨다.
*왕릉장터 : 경북 문경시 가은읍 소재 오일장 지명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