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정운(정운) 이영도 여류 시조시인 연보
1916.10.22 경북 청도군 청도면 내호동 259번지에서 일제 지방군수를 지낸 아버지 이종수와 어머니 구봉래의 1남 2녀 중 막내 딸로, 출생 시조시인 이호우의 친 동생.정규 교육 없이 자가에서 가정교사를 두고 신구 학문 섭렵
1936 대구의 대부호 집안의 막내 아들 박기주와 결혼
1939 외동딸 박진아 출생
1945 부군과 사별, 대구의 이윤수가 주재한 죽순(竹筍) 동인으로 활약하면서 "제야"로 등단. 경남 통영여중 교사 취임
1953 부산 남성여중고 교사
1954 시조집 "청저집(靑苧集)" 상재
1955 마산 성지여고 교사 취임
1956 부산여대 강사
1958 수필집 :춘근집(椿芹集)" 출간
1964 부산 아동회관 관장 취임
1966 수필집 "비둘기 내리는 뜨락" 상재 제8회 늘원 문화상 수상
1968 시조집 "석류"를 오빠 이호우와 함께 오누이 시조지 출간. 중대 출강
1971 시필집 "머나먼 사념의 길목" 상재
1975 한국시조작가협회 부회장, 한국여류문학인회 부회장
1976.3.6 자택에서 뇌일혈로 별세
유고집 "언약" , 유고수필집 "내 그리움은 오직 푸르고 깊은 것"
2.작품
言約
해거름 등성이에 서면
愛慕는 낙락히 나부끼고
透明을 切한 水天을
한 점 밝혀 뜬 言約
그 자락
감감한 山河여
귀뚜리 叡智를 간(磨)다.
바위
- 어머님께 드리는 詩
여기 내 놓인대로 앉아
눈 감고 귀 막아도
목숨의 아픈 證言
꽃가루로 쌓이는 四月
萬里 밖
回歸의 길섶
저 歸燭道 피 뱉는 소리
달무리
우러르면 내 어머님
눈물고이신 눈매
얼굴을 묻고
아. 宇宙이던 가슴
그 자락
鶴같이 여기고, 이 밤
너울 너울 아지랑이
외 따로 열고
비 오고 바람 불어도
가슴은 푸른 하늘
홀로 고운 星座
지우고 일으키며
솔바람
머언 가락에
목이 긴 鶴 한 마리
멀수록 다가 드는
思慕의 空間 밖을
萬里 더 지척같이
넘나드는 꿈의 通路
그 세월
외따로 열고
다둑이는 추운 마음
蘭
나직이 영창 밖으로
스며드는 물빛 黎明
그 숨결 이마에 감고
새댁처럼 素心 눈 뜨네
내 마음
사래 긴 渴症 위를
왁짜히 장다리꽃 튼다
모란
여미어 도사릴수록
그리움은 아득하고
가슴 열면 고여 닿는
겹겹이 먼 하늘
바람만
봄이 겨웁네
옷자락을 흩는다.
天啓
-사월탑 앞에서
신 벗고, 塔 앞에 서면
한 걸음 다가서는 祖國
그 絶叫 사무친 골엔
솔바람도 설레어 운다
푸르게
눈매를 태우며, 너희
지켜 선 하얀 天啓
고비
꽃 피고 싹 트이면
골을 우는 뻐꾸기들
목숨의 크낙한 分娩
함께 앓는 이 고비를
山河도
끓이던 靑血
아, 그 三月, 그 四月에......
雪夜
눈이 오시네, 사락사락
먼 어머님 옷자락 소리
내 新房 장지 밖을
감도시던 기척인 듯
이 한밤
시린 이마 짚으시며
약손인 듯 오시네.
곰곰이 헤는 星霜
멀고 험한 오솔길을
갈(耕)아도 갈아도 목숨은
연자방아 도는 바퀴
갈퀴손
어루만지며
言約인 듯 오시네.
恩寵
잎잎이 가을을 흔들고
들국화 낭랑한 언덕
그 푸름 속 아른 아른
고추감자리 난다
당신 뜰
마지막 饗宴 위로
구름이 가네, 바람이 가네.
그 노을
먼 尖塔이 타네
내 가슴 절벽에도
돌아 앉은 人情 위에
뜨겁던 임의 그 피
悔恨은
어진 깨달음인가
"골고다"로 젖는 노을.
光化門 네거리에서
사월의 이 거리에 서면
내 귀는 소용도는 海溢
그날, 東海를 딩굴며
허옇게 부셔지던 泡哮
그 소리
네 목청에 겹쳐
이 廣場을 넘친다
정작 바길 덤덤해도
한 가슴 앓는 傷痕
차마 바래일(漂白) 수 없는
녹물 같은 얼룩마다
千이요
萬의 푸른 눈매가
나를 불러 세운다.
石榴
다스려도 다스려도
못 여밀 가슴 속을
알알 익은 고독
기어이 터지는 秋晴
한 자락
가던 구름도
추녀 끝에 머문다.
丹楓
너도 타라 여기
황홀한 불길 속에
사랑도 미움도
넘어 선 淸이어라
못내편
그 충춘들이
사뤄 오르는 저 香爐
아지랑이
어루만지듯
당신 숨결
이마에 다사하면
내 사랑은 아지랑이
춘삼월 아지랑이
장다리
조오란 텃밭에
나비
나비
나비
나비
團欒
아이는 글을 읽고
나는 繡를 놓고
심지 돋우고
이마를 맞대이면
어둠도
고운 愛淸에
삼가한 듯 들렀다.
生長
-진아에게
날로 달 붓듯이
자라나는 너를 보면
무엔지 서러움이
기쁨보다 느껴웁고
차라리
바라던 마음
도로 허전 하구나.
비
그대 그리움이
고요히 젖는 이 밤
한결 외로움도
보배냥 오붓하고
실실이
푸는 그 사연
장지 밖에 듣는다.
塔3
너는 저만치 가고
나는 여기 섰는데.....
손 한번 흔들지 못한 채
돌아선 하늘과 땅
愛慕는
舍利로 맺쳐
푸른 도로 굳어라.
그리움
생각을 멀리하면
잊을 수도 있다는데
고된 살음에
잊었는가 하다가도
가다가
월컥 한 가슴
밀고 드는 그리움.
무지개
여윈 그 세월이
덧없는 살음이매
남은 日月은
비단 繡로 새기고저
오매로
어리는 꿈에
눈 부시는 무지개.
白鹿潭
차라리 스스로 달래어
쓰느라니 고였는가
그날 하늘을 흔들고
아우성 치던 불길
투명한
가슴을 열고
여기 내다뵈는 상채기.
海女
눈은 서늘한 눈은
珊瑚빛 어린 하늘
먼 갈매기 울음에
부풀은 淸일레라
여울져
달무리 가듯
일렁이는 뒤움박.
이별
정작 너를 두고
떨쳐 가는 이 길인데
嶺湖 千里를
구비마다 겨운 봄빛
山川이 뒤져 갈수록
닥아 드는 體溫이여!
3. 이영도의 작품세계/ 사향 노루 지나간 뒤에는 <이은상>
동양에 있어서 여류 시인의 작품들을 살펴본다면, 중국 고대로 올라가 서왕모(西王母)의 "천자요(天子謠)" 까지는 굳이 들추지 않더라도,노나라 도명(陶明)의 딸 도영(陶영)이 지은 황곡가(黃鵠歌)나 송강왕(宋康王) 때 한빙(韓憑)의 아내 하씨(河氏)가 지은 오작가(烏鵲歌)로부터는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수천년의 역사를 지녔고, 또 우리 국사상에 있어서도, 고구려 뱃사공 곽리자고(藿里子高)의 아내 여옥(麗玉)의 공후인과 신라 여인 설요(薛요)의 반속요(返俗謠)와 백제 행상의 아내가 부른 정읍사(井邑詞)로부터 손꼽을 수 있을 것이라.
이도 역시 천 수백 년의 역사를 지녔고, 그 이후 고려, 이씨 왕조를 통하여서도 자못 수 백명의 여류 시인과 그들의 아름다운 작품을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시조 작품을 남긴 여성들만도 역대를 통하여 현부인,궁녀,기생들을 아울러 현재 문헌상에 나타 난 이름이 자못 30명에 이르고 있음을 본다.
그리고 우리 시대에 와서도, 일찍부터 여류 시조 작가가 나타나지 않은 것이 아니었지만, 그 중에서도 여름밤 구름을 뚫고 나타나는 달처럼, 모두를 쳐다보도록 맑고 환한 모습을 드러내보인 두드러진 여류 시조 작가가 누구였더냐 물으면, 아마 누구도 이 영도를 지적할 것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것은 그가 확실히 시인이 도달해야 할 어떤 경지에 이르렀던 여인이기 때문이다.
시인이 자연을 묘사하기는 쉽다. 그러나 그것 가지고서는 시인이 어느 깊은 경지에 들어갔다고는 보기 어렵다. 시는 어떤 묘사로써 일삼기보다는 자연과 대화를 나눌 수가 있어야 한다. 물론 이것은 음악이나 미술 등 모든 예술에 다 통하는 말이기도 한 것이다.
우리는 이영도의 시조 작품 속에서 그가 자연과 나누던 대화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또 어느것에서는 그가 자기 스스로 맑고 미묘한 정서 속에 휘말려 들어가서 숨가쁘게 심호흡을 하는 소리를 듣기도 하는 것이다. 그는 무엇인가 갈구하고 있었다. 신의 문을 두들기며 대답을 들으려 했다. 그러나 마침내 세상 인연을 끊어버리고 신의 품속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것이 그의 일생이었다.
다만 사향노루가 지나간 위에는 발자국 닿은 풀끝마다 향기가 끼치듯이. 그는 어디론지 가버렸건만, 향내 머금은 작품들이 남아 우리 가슴에 풍기고 있다
-유고집 "언약" 서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