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푸레나무 - 최춘해
물푸레나무는
남보다 일찍 꽃을 피웁니다.
참나무, 오리나무, 소나무, 싸리나무
잡목들 틈에서 노란 꽃을 피웁니다.
다른 나무가 눈뜨기 전에
얼른 꽃을 피우는 건
어서 일이 하고 싶은 몸짓입니다.
보리 타작, 밀 타작을 하던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다부진 몸매
이젠 할일이 없습니다.
하릴없이 그냥 서 있기는
못 참을 일입니다.
콩 타작이라도 하고 싶습니다.
보리 타작은 탈곡기가 가로채서
도리깨도 못 되고
도끼 자루가 되기는 무섭고
껍질만 벗겨서 약이 되거나
불에 타서 물감이 되는 건 싫습니다.
총대가 되는 건 더욱 무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