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싶지 않니?
-이화주 시, 노승경 그림
식구들이 모두 잠든 깊은 밤
가만히 책상에 앉아
사각사각 일기를 쓰면
네 마음속에 숨어살고 있는 아이가
창문을 살며시 열고 속삭인단다.
"나 불렀니?"
사색하고 공상하며 빈둥거린 시절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보다 훨씬 처절하고 삭막한 표정을 지으며 살고 있을 게다. 나를 들여다보며 끼적거린 낙서들, 미지의 대상과 나눈 밤의 대화들, 고요한 반성과 뜨거운 열망 사이를 헤엄친 언어들……. 이런 것들이 남아, 시들어 가는 몸에 그나마 윤기를 남겨 주는 것. 공부하는 게 아니라는 이유로, 책상앞에 앉아 사색에 잠겨 있는 아이를 놀라게 하지마라. 내면을 향하는 문이 닫혀 버리면, 그 아이에게서 더는 향내를 맡을 수 없게 된다.
박덕규 <작가, 단국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