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이 장미를 원한다 나 이 장미를 박살내길 원한다 마치 멋진 도자기를 주먹으로 내질러 조각내길 원하듯이 나 이 장미를 참살하길 원한다 마치 칠면조의 내장을 뽑고 꼬챙이로 꿰길 원하듯이 나 이 장미를 절단하길 원한다 마치 부싯돌로 한 소년을 할례하길 원하듯이 나 이 장미를 갈망한다 나 이 장미가 내 온 몸과 영혼 위에서 물집과 농양으로 화농하길 원한다 나 이 장미를 처박길 원한다 나의 멀어버린 한쪽 눈 썩은 눈구멍 속으로 나 이 장미를 별들로부터 은하수를 지워내는 일에 사용하길 원한다 무엇보다도 나 이 장미를 구름 속으로 던져 올려 폭발시키길 원한다.
* 번역: 서강목(한신대 영문과 교수, 『실천문학』 편집위원)
자카리아 모하메드 (Zakaria Mohammed)
팔레스타인의 시인이자 소설가. 1950년 나불루스 출생. 이라크 바그다드대학에서 아랍어학 전공. 시집으로 『마지막 시들』, 『손으로 만든 물건』, 『아스카다르를 지나가는 말』, 『햇살』 등, 장편소설 『빈 눈동자』, 『자전거 타는 사람』, 비평집 『팔레스타인 문화론』 등과 다수의 아동물을 펴냄. 현재 아랍작가연맹과 팔레스타인 작가연맹 회원.
그가 다시 왔다. 잘생긴 팔레스타인의 시인 자카리아 모하메드. 지난해 그는 처음 한국 땅을 밟았는데, 마침 김선일 씨 피살 사건 직후라 관심은 온통 함께 온 이라크 시인에게 쏠렸다. 그래도 나는 그가 기자회견 때 했던 말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나는 한국이 이렇게 가까운 줄 몰랐습니다. 내가 사는 라말라에서 이웃 동네로 가는 게 요르단까지 나와서 방콕을 거쳐 다시 한국으로 오는 것보다 훨씬 힘드니까요.” 점령지에 산다는 것, 그것도 시인으로 산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싫든 좋든 저 지독한 80년대의 아들인 나로서는 그의 입에서 어떤 뾰족한 저항의 발언이 나오기를 은근히 기대했을 터. 그러나 놀랍게도 그의 입에서 나온 일성은 “장미”였다. 그는 말했다. “나는 더 이상 탱크에 대해서 쓰고 싶지 않습니다. 대신 나는 장미에 대해서 쓰고 싶습니다.” 그게 이스라엘의 야만적 점령에 대항하여 싸우기를 포기한다는 뜻일까? 천만에! 그는 정확히 그 반대의 의지를 “장미”라는 놀라운 무기에 얹어 드러냈던 것이다. 솔직히 번역된 그의 시 「장미」는 그다지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지그시 눈을 감고 자신의 시를 아랍어로 읊는 것을 본다면, 시가 왜 모국어와 운명을 같이하는지 능히 이해할 것이다. 며칠 전 그는 제주에서 열린 4.3항쟁 57주년 기념식에서 연대사를 발표했다. 절망과 비극의 땅 제주가 새로이 ‘평화의 섬’으로 선포된 이 때, 멀리 팔레스타인에서 온 한 시인의 연대사는 더욱 뜻 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