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린천을 지나’- 최하림(1939∼ )
내린천을 지나 인제로
미시령으로 돌아다니다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깊은 잠에 떨어졌네
꿈도 꾸지 않았네
한줄기 별똥별도
흐르지 않았네
캄캄한 잠 속을 헤매고 헤맨 뒤
또르르또르르 물소리 같은 소리가
계속 귓바퀴를 울려 나는 일어났네
물소리 같은 소리가
집을 울리고
나무도 새도
울렸네
가을은
각각의
집으로 돌아가
울고 있었네
지붕 위로 떼 지어 어스름이 달렸네
검은 바위들이 어둠에 잠겼네
아무것도 나는 알 수 없었네
경(經) 한 장 읽을 수 없었네
내 작은 귀에도 또르르또르르 물소리가 흐르는 것 같다. 귀가 트이는 것 같다. 발성을 낮추고 당신 곁에 내려앉거나 스쳐가는 소리에 귀기울여 보라. 먼저 말하지 않고 먼저 들어보라. 당신이 살아야 할 근사한 이유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불 끄고 들어보라, 삶이 건네는 밀어(密語) 혹은 밀어(蜜語)를. <문태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