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 가서'- 유안진(1941~ )
밤비에 씻긴 눈에
새벽별로 뜨지 말고
천둥번개 울고 간 기슭에
산나리 꽃대궁으로 고개 숙여 피지도 말고
꽃도 별도 아닌 이대로가 좋아요
이 모양 초라한 대로 우리
이 세상에서 자주 만나요
앓는 것도 자랑거리 삼아
나이만큼씩 늙어가자요.
시 한 편은 이처럼 우리의 피곤한 발을 씻겨준다. 살면서 지금 이대로의 형편에 만족하기는 좀체 쉽지 않다. 우리는 꽃이, 별이 되고 싶어한다. 그러나 엄연히 낙화의 시절이 있고, 별똥이 지는 곳이 있다. 눈가에 늘어나는 주름과, 긴 끈 같은 당신의 수다와, 수척한 얼굴도 나는 좋다. 거울을 마주하듯 마음의 병실(病室)마저 나에게 보여다오. 밤은 언덕 같은 것. 언덕을 넘어 이 새 아침에 우리 다시 만나자.
<문태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