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머루'- 고형렬(1954~ )
강원도 부론면 어디쯤 멀리 가서
서울의 미운 사람들이 그리워졌으면.
옛날 서울을 처음 올 때처럼
보고 싶었던 사람들, 그 이름들
어느새 이렇게 미워지고 늙었다.
다시 진부 어디쯤 멀리 떨어져 살아
미워진 사람들 다시 보고 싶게
시기와 욕심조차 아름다워졌으면.
가뭄 끝에 펑펑 쏟아지는 눈처럼
서울 어느 밤의 특설령처럼
못 견디게 그리운 사랑이 되었으면.
그러나 우린 모두 사라질 것이다.
사람이 미울 땐 웃어도 밉다. 마음보가 원래 그렇다. 손바닥을 요리조리 뒤집듯 한다. 그럴 땐 아니 볼 듯 돌아서라. 사랑에도 유예가 필요하다. 돌아서서 그 사람의 얼굴이 흐릿해지는 곳까지 가 보라. 멀찌감치 물러서 거리(距離)를 둬 보라. 그 거리가 그리움의 무게다. 어느새 새싹 같은 이 말이 돋아날 것이다. "당신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문태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