小春 - 오탁번
- 음력 시월을 小春이라 부른다
된서리 내린 깊은 가을 해거름
삐약삐약 핸드폰이 울더니
'버선코 같은 초저녁별 한 접 보냄다'
간질간질한 메시지가 오네
명왕성 근처 과수원에서
퀵 서비스 광속으로 보내온
능금처럼 잘 익은
초저녁별 한 접 받아 드네
사라져간 젊음의 피톨 하나하나
서럽게 불러내어
반짝이는 등불을 켜듯
별 하나 하나 맛있게 까 먹네
봄날처럼 따듯한 햇살이 비추는
기러기 혓바닥만한
小春의 들녘에는
알맹이 다 털어버린 볏단이
면도도 하지 않은
흰 수염 다붓한 내 턱처럼 시린데
그대와 나
아직 못다 한 인연이라도 있는지
그렇고말고 시늉하듯
초저녁별 깜박깜박 빛나네
스톤헨지 세우고 피라밋 뚝딱 만들던
선사시대의 거인처럼
별 한 접 다 먹고
문득 고개 들어 바라보는 하늘에는
되똥되똥 길 잘못 든 살별 하나
능금껍질처럼 곡선으로 사라지네
안 되겠다 안 되겠다
그대와 나
버선코마냥 오똑오똑한 새끼를 낳자
앙증맞은 小春의 햇볕 아래
토실토실하게 키운 새끼가
깡총깡총 태양계 너머로 달아나면
우리는 그냥 팔짱을 끼고
새끼 따라 은근슬쩍 잠적해버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