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오십의 부록 - 정숙자
편지는 내 징검다리 첫 돌이었다
어릴 적엔 동네 할머니들 대필로 편지를 썼고
고향 떠난 뒤로는 아버님께 가용돈 부쳐드리며 “제 걱정은 마세요” 편지를 썼다
매일 밤 내 동생 인자에게 편지를 썼고
두례에게도 편지를 썼다
시인이 되고부터는 책 보내온 문인들에게 편지를 썼고
마음 한구석 다쳤을 때는 구름에게 바람에게 편지를 썼다
돌아가신 어머니 그리울 때는 저승으로 편지를 썼고
조용한 산책로에선 풀잎에게 벌레에게 공기에게도 편지를 썼다
셀 수 없이 많은 편지를 쓰며 나는 오늘까지 건너왔노라
희망이 꺾일 때마다 하느님께 편지를 썼고
춥고 외로울 때는 언젠가 묻어준 고양이 무덤 앞에서 우울을 누르며 편지를 썼다
어찌어찌 발표된 몇 줄 시조차도 한 눈금만 들여다보면 모습을 바꾼 편지에 다름 아니다
편지는 내 초라한 삶을 세상으로 이어준 외나무다리, 혹은
맑고 따뜻한 돌다리였다
편지가 있어 내 하루하루는 식지 않았다
한 가닥 화려함 잃지 않았다
편지봉투 만들고, 편지지 접고, 우표를 붙일 때마다
시간과 나는 서로를 사랑하고 용서하고 또 믿었다
그리고 그 조그만 빛이 다음 번 징검돌이 되고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