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계 - 박두진 (1916 ~ 98)
거기서 너 서 있는 채로 떠내려가지 말아라.
거기서 너 서 있는 채로 무너지지 말아라.
거기서 너 서 있는 채로 뒤돌아보지 말아라.
거기서 너 서 있는 채로 눈물 흘리지 말아라.
거기서 너 서 있는 채로 너를 잃어버리지 말아라.
네가 가진 너의 속의 불을 질러라.
네가 가진 너의 속의 칼을 갈아라.
네가 가진 너의 속의 심장을 푸득여라.
이에는 이로 갚고 사랑 포기하라.
눈에는 눈으로 갚고 사랑 포기하라.
세상에서 가장 정당한 법은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러려면 사랑, 이라는 여지는 포기해야 한다. '이에는 입술, 눈에는 눈빛'의 부드럽고 따뜻한 대응이 더 많았기를. 떠내려가지 않고, 무너지지 않고 나를 잃지 않으리란 계율들이 잘 지켜졌기를. 그러나 엄한 계율보다는 자연스럽고 행복한 해제가 더 많았기를 ….
김경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