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을 한 순간 - 박상순(1962~ )
텅 빈 버스가 굴러왔다
새가 내렸다
고양이가 내렸다
오토바이를 탄 피자 배달원이 내렸고
15톤 트럭이 흙먼지를 날리며
버스에서 내렸다
텅 빈 버스가 내 손바닥 안으로 굴러왔다
나도 내렸다
울고 있던 내 돌들도 모두 내렸다
텅 빈 버스가 굴러왔다
단풍잎 하나
초침이 돌고 있는 내 눈 속에
떨어지고 있었다
이 시는 언어의 비디오로 찍은 동영상이다. 어느 가을날의 쓸쓸한 풍경이 순간순간 이어져 한 편의 단편영화를 보는 듯하다. 영화를 보는 관객도, 영화 속의 주인공도 곧 눈물을 터뜨릴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우리가 결국 순간을 사는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정호승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