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바늘구멍 속을 지나가고 있다 지겨운 머리통은 겨우 빠져나왔는데 어깨가 통 빠지지 않는다 이렇게 쌍봉낙타는 바늘구멍 속에 걸려 있다 지독한 비극은 해학이 되고 말았다 이 바늘은 이번에 운이 좋지 않은 것 같다 내 운명처럼 내 몸을 통과시키지 못할 것 같다 나는 바늘을 질질 끌고 간다 바늘이 목과 허리를 마구 찔러댄다
밖을 내다본다 구름이 한가롭다 지구가 이처럼 맑은 가을을 만들 때가 있다 한글이 만들어지던 조선 초기나 당대나 마찬가지 바늘구멍을 빠져나간 바람들이 신들의 양식이던 화강암 흰돌을 우물우물 먹고 있다 또 한쪽 어깨가 빠지지 않는다 눈알도 귀도 입도 손도 다 빠져나왔는데 내 뒤에 있는 이 어깨가 나오지 않는다
울불퉁한 쌍봉낙타가 더럽게 바늘에 걸려 있다 처음 나의 목표는 전방 일 킬로미터가 아니었다 결국 나는 이렇게 바늘에 걸려 살 것이다 다 살고 나면 바늘만 그 자리에 남을 것 이 바늘구멍이 내 몸이 걸렸던 곳
이 사실을 누구도 기억할 수 없을 것이다 나의 죽음도 생각하며 생생하게 살아있을 때 나는 목걸이처럼 바늘을 목에 걸고 저 길을 걸었다 보게 나의 이 기막힌 바늘 목걸이를 엉거주춤 바늘구멍에 걸려 빠져나가지 못하는 나를 나는 지금 바늘구멍에 걸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