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나의 침묵은 꽃핀 나무들로 인한 것, 하동 근처 꽃 핀 배나무밭 지날 때만 해도 몸이 다시 아플 줄 몰랐다 산천재 앞 매화나무는 꽃 피운 흔적조차 없고 현호색은 아직 벌깨덩굴 곁에 숨어 있다 너무 늦거나 빠른 것은 봄꽃만이 아니어서 한잎도 남김없이 만개한 벚꽃의 갈 데로 다 간 흰빛을 경멸도 하다가 산괴불주머니 텅 빈 줄기 푹 꺼져들어가는 속을 피리소리처럼 통과해보기도 하다가 붉은 꽃대 속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하고
몸이 견딜 만하면 아팠던 때를 잊어버린다 내 몸이 늘 아프고자 한다는 걸, 누워 있으면 서 있을 때보다 세상이 더 잘 보이는 이유를 또 잊어버린다 통증이 살며시 등뒤로 와 나를 껴안는다 몸을 빠져나간 소리들 갈데 없이 떠도는 꽃나무 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