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들아! 네가 죽든 내가 죽든 오늘 하나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 라고 혜화동 하나은행 앞 구두수선집 철판에 누군가 쓰셨네 내 오로지 거룩한 밥 공양을 위하여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오늘 문득 세상의 밥이 되어 걸어가네 나를 밥이라고 생각하는 그대여 따뜻하게 나를 잡수시고 국도 말아 드시는 그대여 살아야 할 의무처럼 누군가 자꾸 내 앞에서 스러지고 술 불콰한 가슴으로 귀가하는 저녁 내가 밥이라고 불렀던 사랑이 늙어가고 내가 사랑이라 불렀던 밥들이 고양이 눈을 하고 일어서는 저, 저것들 온몸으로 보시하는 족속들
어느새 집을 뛰쳐나와 음산한 아스팔트 위에 납작 깔려 있었네 순간의 비명이 착색되어 있는 거리 아스팔트도 차곡차곡 기억을 먹네 고양이 개 같은 것들의 기억을 먹는 거리를 걷다가 먹이사슬처럼 구두수선집 철판 앞에 다시 서네, 누군가 '반드시'라고 쓰셨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