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 정원숙이곳은 페루자줏빛 달이 뜨는 섬깨진 알을 낳은 새들이 자꾸 헛발길질을 하고바람은 파도를 거슬러 솟구쳐올라요페루로 가는 길은 알 수 없지만 나는 페루에 있어요해안선을 따라 죽은 물고기들이 시간을 말리고나는 갈증 없는 기억들을 건조시켜요향기 없는 바람이 목울대를 간질이고머나먼 대륙의 모래는 안부 잃은 당신 소식 전해 주어요꽃이 피지 않는 섬이곳에서 나는 몇 계절을 충분히 견디고당신은 기어코 십년 전의 그 향기로 내 품에 안겨오므로바람결에 당신의 체온이 묻어나므로당신의 소식을 기다리지 않기로 했어요참으로 알 수 없는 파도의 말씀늙은 시계추처럼 위태로운 추락 직전의 그리움부쩍 시야가 좁아져가는 나,눈 먼 새처럼 주변의 것들에 대하여 천착하게 되는 것은 왜 일까요페루라 이름 붙여진 섬세상으로부터 망명한 나의 안식처사방에서 번져오는 고요와 침묵당신의 숨소리 한 올 한 올 곱게 땋아 내 속 깊은 우물 속으로 던져넣어요저 깊은 곳에서 울려나오는 공명음새들의 울음소리시간에 저항하는 성난 바람소리고요 속의 함성함성 속의 침묵당신은 페루를 모르지만페루에는 당신의 숨결이 흐르므로 당신을 찾지 않기로 했어요자줏빛 달 속에 떠오르는 천 개의 숨결미끄러지고 고꾸라지고 흩어지는 그 숨결 속에서 터져나오는 천 개의 별집 없는 새들의 눈물이 파도 위 실로폰을 연주하고 입술이 뭉개진 나는 노래를 불러요천 개의 별이 흐르고 천 개의 고요가 왁자지껄 굴러도 천 개의 불멸은 침묵하고 있어요새들은 별자리마다 둥지 같은 무덤을 파고비로소 내 속 깊은 곳의 우물 속에 던져진 밧줄이 목울대를 밀며 토해져 나와요당신은 머나먼 대륙에 있고 이곳 페루에도 있으므로당신의 이름을 부르지 않아도 당신은 그곳에 있고 이곳 페루에도 있어요그리하여 새들은 죽지 않고 다만 힘을 잃어갈 뿐불온한 안식이 도처에 우글거릴 뿐우상도 없고 은유도 메마른 곳, 페루침묵의 망명자인 새들만이 마지막 숨결을 몰아쉬며 날갯죽지를 모래톱에 묻어요시간이 모두 정지해버린 페루살아도 살아지지 않는 날들그러므로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고 아무것도 호명하지 않기로 했어요* 로맹가리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