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 / 김기택(1957~ )
옆구리에서 아까부터
무언가가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내려다보니 작은 할머니였다.
만원 전동차에서 내리려고
혼자 헛되이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승객들은 빈틈없이 할머니를 에워싸고
높고 튼튼한 벽이 되어 있었다.
할머니가 아무리 중얼거리며 떠밀어도
벽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있는 힘을 다하였으나
태아의 발가락처럼 꿈틀거릴 뿐이었다.
전동차가 멈추고 문이 열리고 닫혔지만
벽은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할머니가 필사적으로 꿈틀거리는 동안
꿈틀거릴수록 점점 작아지는 동안
승객들은 빈틈을 더 세게 조이며
더욱 견고한 벽이 되고 있었다.
세상에 이보다 더 견고한 벽이 어디 있을까. 이 벽은 의로운 누군가에 의해 반드시 무너지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를 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알고 있으면서도 실천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실천의 결실이 아니라 실천 그 자체다. 실천이 없는데 무슨 결과가 있겠는가. 지금 '그 벽'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도 나중에는 이 시의 할머니처럼 '그 벽'에 갇혀 무서움에 떨 것이다.
정호승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