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땅 사이에 - 김형영 (1944~ )
눈 덮인 산중
늙은 감나무
지는 노을 움켜서
허공에 내어건
홍시 하나
쭈그렁 밤탱이가 되어
이제 더는
매달릴 힘조차 없어
눈송이 하나에도
흔들리고 있는
홍시 하나
하늘과 땅 사이에
외롭게 매달린 예수처럼
바람으로 바람을 견디며
추위로 추위 견디며
먼 세상 꿈꾸고 있네
저 눈 덮인 깊은 산중에 늙은 감나무 하나. 그 높은 가지 끝에 매달려 흔들리는 홍시 하나. 그 홍시를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에 비유한 시인의 눈이 경이롭다. 김형영 시인의 시에서는 이런 놀라운 영성의 숨소리가 들린다. 나는 예수에게도 배반자가 있었다는 사실에 늘 위안을 받는다. 예수의 손에도 못 자국이 나기 전에 노동으로 굳어진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는 사실도 나에게는 큰 교훈이다. 그러나 그가 죽음을 통하여 애써 가르친 사랑과 용서에 대해서는 늘 고민이 많다. 죄는 인간의 몫이고 용서는 신의 몫인가.
정호승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