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홍운 - 설태수
- 봉황, 그리고 무릉원을 가다
어두컴컴한 골목.
낡은 외짝문 기둥에 새겨진 붉은 글.
天賜鴻運.
'하늘이 크나큰 행운을 내려주다'는 뜻의
네 글자가
언제 찌그러질지 모를 빈궁한 그 집을
받쳐주고 있다.
인근에 번듯한 빌딩이 올라가고
화려한 주점에서
밤늦도록 노래 소리 울려 퍼져도
초연한 듯이 박혀있는 글자.
天賜鴻運.
숨쉬며 살아있다는 것.
움직일 수 있다는 것.
눈빛을 던질 수 있다는 것.
이 모두가
하늘이 준 크나큰 행운.
멀리 안 가도
천하를 주유하지 않아도
밤하늘 반짝거리는 별을 보고
사람들 소리 들리니.
天賜鴻運.
저 산모퉁이를 돌아 고개 하나 넘으면
무릉원이 펼쳐져 있어
바람 타고 종종 꽃잎 날려 오고
구름 따라 비를 뿌려주니.
천사홍운.
천사홍운.
이 몸 병들어
집밖을 못 보고
님 먼저 떠나
혼자 남아 있어도
님의 수저를 곁에 둘 수 있으니.
천사홍운.
천사홍운.
때 되어 나 홀로 떠날 적에
붉은 노을 속에 새소리 들려
온기 남은 두 귀가
적적하질 않으니.
천사홍운.
천사홍운.
마침내 구름 너머에서
마중 오는 님.
두 팔 벌려 달려오는 님께
눈물이 먼저 길을 내니.
천사홍운.
천사홍운.
오, 눈물의 세계가
天賜鴻運.
슬픔의 바다가
天賜鴻運.
*봉황, 무릉원은 중국 호남성에 있는 지명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