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까지 책을 골라올까? - 맹문재
나는 여전히 서점에서 '혁명'의 책들을 골라오지만
거의 읽지 않는다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에 재미를 들여서도
주식이나 부동산 투기에 몰두해서도
노동자 투쟁 같은 실천행동에 바빠서도 아니다
나는 화투에 중독된 노름꾼처럼 시간을 뒤적이느라
책을 읽지 않는 것이다
시간에 빠진 나는
시간을 보고 시간을 듣고 시간을 추종하느라 정신이 없다
오늘도 시간은 온화한 목소리로
내게 잘못이 없더라도 용서하는 마음을 가지라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림자만큼 제자리를 지키라고
불행을 예방주사처럼 맞으라고
내게 기도하듯 들려준다
나는 시간의 당부를 들을 때마다
역정조차 못 내는 진폐환자 같은 처지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경악하고 부끄러워하며 내팽개친 책을 잡는다
그렇지만 시간의 얼굴이 호수보다 넗고 부드러워
나는 또다시 포기하고 만다
칼끝처럼 서 있던 나의 고집은 어느새
배부른 아기처럼 잠드는 것이다
나는 언제까지 '혁명'의 책들을 골라올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