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조(1945~2003), '반딧불'
내 가슴속 어두운 방에
반딧불 하나 키웠으면 좋겠네
낮에는 풀잎 뒤 이슬로 숨었다가
밤이면 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깨우는
가장 절실하게 빛나는 언어가 되는
더러는 꽃이 되는 원죄가 되는
나 눈 번히 뜨고도 세상 어두워
지척을 분간하지 못할 때
아차! 발 삐끗 미망 속을 헤맬 때
반짝반짝 나만 아는 신호를 보내는
먼 그리움 같은 반딧불 하나
아무도 모르게 가졌으면 좋겠네
내 영혼의 배터리가 다 닳아
삶이 시큰둥 깜박거릴 때
온몸을 짜릿짜릿 충전해주는
그 은밀한 사랑, 그게 혹
황홀한 고통의 마약일지라도
나는 죄짓듯 기꺼이 음독하겠네
손만 대면 확! 뜨겁게 점등하는
알전구처럼 성감대가 민감한
반딧불 하나 환히 켜졌으면 좋겠다
쓸쓸하고 어두운 나의 빈방에.
나는 매일 환한 방. 아무도 숨지 않는 환한 방.
비밀도 게으름도 숨지 못하는 환한 방.
숲이 없는, 언덕이 없는 방. 시냇물도 없는, 비탈길도 없는 방.
자동으로 전등이 켜지는 환한 방. 반딧불이 살지 않는 우리들의 방.
박상순<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