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수(1922~2004), '샤걀의 마을에 내리는 눈'
샤갈의 마을에는 3월에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서있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이
바르르 떤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을 어루만지며
눈은 수천 수만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3월에 눈이 오면
샤갈의 마을의 쥐똥 만한 겨울열매들은
다시 올리브 빛으로 물이 들고
밤에 아낙들은
그 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3월. 샤갈의 마을에는 눈이 내리고 우리들의 도시에는 봄이 온다.
오늘 당신을 위해 나는 추운 나라의 아내가 돼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싶다.
당신의 온몸에 날개를 달아 저 하늘로 폭죽처럼 쏘아 올리는 샤갈이 되고 싶다.
그렇게 가장 아름다운 빛깔로 당신의 3월을 열고 싶다.
박상순<시인>
◆ 필자 약력
▶ 1962년 서울 출생▶ 91년 시 '빵공장으로 통하는 철도' 등으로 등단
▶ 시집 '6은 나무 7은 돌고래' '마라나, 포르노 만화의 여주인공' '러브 아다지오'
▶ 현대시 동인상 수상▶ 민음사 편집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