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자(1952~ ), 「고통의 춤」 전문
바람이 독점한 세상.
저 드센 바람 함대,
등 푸른 식인 상어떼.
반사적으로 부풀어오르는 내 방광.
오늘 밤의 싸움은 팽팽하다.
나는 그것을 예감한다.
그리하여 이제 휘황한
고통의 춤은 시작되고,
슬픔이여 보라,
네 리듬에 맞추어
내가 춤을 추느니
이 유연한 팔과 다리,
평생토록 내 몸이
얼마나 잘
네 리듬에 길들여졌느냐.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이 올 때, 시인은 그것을 거스르지 않는다.
쉽사리 희망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다.
시인은 오히려 다른 시에서 <희망은 감옥>이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시인은 제 몸을 슬픔에게 내주어, 슬픔이 제 팔다리인 양 마음껏 춤을 추도록 내버려둔다.
아내를 역신에게 빼앗기고도 춤을 춘 처용처럼,
시인은 제 팔다리가 슬픔에게 빼앗긴 것을 보고도 기꺼이 그의 리듬에 맞추어 유연하게 춤을 춘다.
김기택<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