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종환(1954~ ) '가구' 부분
아내와 나는 가구처럼 자기 자리에
놓여 있다 장롱이 그러듯이
오래 묵은 습관들을 담은 채
각자 어두워질 때까지 앉아 일을 하곤 한다
어쩌다 내가 아내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아내의 몸에서는 삐이걱 하는 소리가 난다
나는 아내의 몸속에서 무언가를 찾다가
무엇을 찾으러 왔는지 잊어버리고
돌아 나온다 그러면 아내는 다시
아래위가 꼭 맞는 서랍이 되어 닫힌다
(중략)
나는 늘 머쓱해진 채 아내를 건너다보다
돌아앉는 일에 익숙해져 있다
본래 가구들끼리는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그저 아내는 아내의 방에 놓여 있고
나는 내 자리에서 내 그림자와 함께
육중하게 어두워지고 있을 뿐이다
장롱을 들어내면 그 자리만 빛에 덜 바래고 때가 타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오래된 장롱처럼, 발에 맞는 신발처럼, 가족은 우리에게 주어진 무감한 축복이다.
그러나 서로에게 익숙해진다는 것은 90%의 편안함과 10%의 쓸쓸함을 동반한다.
10%의 쓸쓸함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종종 삐걱거려야 한다.
안 열던 서랍도 뒤집어보아야 한다.
나희덕<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