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옥관(1955~ ) '잃어버린 열쇠' 전문
누가 잃어버린 것일까
풀밭에 버려진 녹슨 열쇠
누가 이 초록을 열어보려 했던 것일까
누가 이 봉쇄수도원을 두드렸을까
차가운 촛농으로 잠근 오래된 사원
수런수런 연둣빛 입술들이 피워올리는 기도문
개미들이 땅과 하늘을 꿰매고 있다
아, 저기 호두껍질을 뒤집어쓴
사람이 걸어오고 있다
風病(풍병) 든 그의 암호, 누구도 열 수 없다
녹슨 열쇠는 그것으로 열 수 있던 한 세계가 있었음을 말해준다.
자연이라는 신전의 기둥에서 흘러나오는 말을 받아 적던 상징주
의자들처럼, 시인은 오늘도 닫힌 초록의 문 앞을 서성거린다.
바람이 불면 수런수런 무슨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기도 하지만,
개미들이 줄지어 가며 그 트더진 봉합선을 꿰매버린다. 그러니
어찌하랴. 호두껍질처럼 굳어버린 말을 안고 절룩절룩 걸어갈 수밖에.
나희덕<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