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창환(1945~ ) '당나귀' 전문
염소 대신
당나귀는 어떨까
황토 먼지 자욱한
저녁 길
뿌옇게 흐린 잔등에
한 무더기 봇짐 얹고
투벅투벅
걷는
당나귀
땀 젖고 지친
바람을 가르는 싱그러운 말갈기에 삶을 비유하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그것이 땀에 젖은 한 마리 당나귀와 같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연변 들판에서 당나귀나
노새를 만나면 나도 모르게 자꾸 돌아보곤 했다.
해질녘 여윈 등에 짐을 얹고 먼지 속으로 멀어져 가는 그
모습이 왠지 안쓰러우면서도 정겨워서. 저 슬픈 초식동물
처럼 '투벅투벅' 한 생애가 가리라.
나희덕<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