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창룡(1966~ ) '소화(消化)'
차내 입구가 몹시 혼잡하오니
다음 손님을 위해서 조금씩
안으로 들어가 주시기 바랍니다
승객 여러분
봄 여름 가을
입구에서 서성대고 계시는
승객 여러분
입구가 몹시 혼잡하오니 조금씩
안으로 들어가 주시기 바랍니다
갈 봄 여름 없이
가을이 옵니다
다음 손님을 위해서 조금씩
겨울로 들어가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 정류장은 봄입니다
아침마다 우리는 어디론가 실려간다. 꾸룩거리는 배속의 밥알처럼.
좀 더 안으로 들어가라고, 그래야 좀 더 태울 수 있다고,
운전기사는 소리친다. 그래야 봄이라는 정류장에 내릴 수 있다고
말이다. 만원 버스에서 이리 밀리고 저리 밟히는 동안 갈 봄 여름
없이 가을이 오고, 겨울이 멀지 않았다. 그런데 아, 내리려고 보니
어느새 소화가 되어버렸다.
나희덕<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