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진 (1955~) '봄' 전문
문빈정사
섬돌 위에
눈빛 맑은 스님의
털신 한 켤레
어느날
새의 깃털처럼
하얀 고무신으로 바뀌었네
강 건너 마을에 청매화꽃 필 때는 눈색이 도랑물에 흰 구름 흘러갈 때.
산 너머 마을에 홍매화꽃 필 적이면 돌각담 비집고 스며드는 샛바람
한 올에도 연분홍 꽃향기가 꿈결 같은 때…난봉산 자락에 매화꽃이 피다.
꽃향기를 따라 천천히 걷다가 문득 한 무리의 새떼를 만나다.
나무와 나무 사이를 새들은 바지런히 날아다니고 매화꽃 향기들은
이승의 어두컴컴한 시간들을 출렁출렁 흔드는데, 다음 구례 장날엔
꽃 필 적 신을 흰 고무신 한 켤레 사 두어야겠다.
곽재구<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