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택(1948~ ) '시를 쓰다가' 전문
시를 쓰다가
연필을 놓으면
물소리가 찾아오고
불을 끄면
새벽 달빛이 찾아온다
내가 떠나면
꽃잎을 입에 문 새가
저 산을 넘어와
울 것이다
새벽이다. 창 밖의 숲에 무슨 축제가 있나 보다.
새들의 지저귐 소리가 숲을 흔든다.
새들은 소리마다 빛깔을 지닌다. 가만히 귀 기울인다.
숲속에 사는 모든 종류의 새들이 색색의 꽃가지 하나
씩을 물고 하늘로 날아오른다.
어떤 새는 현호색 꽃잎을 물고 하늘로 오르고,
어떤 새는 수수꽃다리 꽃잎을 물고 날아오른다.
꼬리와 날개가 노란 작은 새는 산수유 꽃가지를 물고
솟구친다.
새들이 날아오른 하늘 근처의 구름들도 색색으로 물든다.
낮고 조용하게 우는 새도 있다.
맥문동 꽃밭에 고인 새벽 공기처럼….
만리나 멀리 스며 나간다는 은목서 꽃향기처럼….
다 여문 수수밭을 떠나지 못하는 바람처럼….
첫 햇살이 쏟아지고, 나는 연필을 깎기 시작한다.
곽재구<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