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영(1957~) '민들레꽃 필 무렵' 전문
그 남자한테서
가을햇빛에 펄럭이는 삶은 기저귀 냄새가 났습니다
그 냄새에 코를 박고 오랜 시간 나는 행복했습니다
볼프강 라이프라는 독일 화가를 기억한다. 제1회 광주 비엔날레.
속도라는 테마가 붙은 전시장에 놓인 그의 작품은 전시의 테마와는
좀처럼 어울려 보이지 않았다. 두 개의 생선상자를 붙여놓은 크기의
나무 상자에 노란 민들레 꽃가루를 수북이 쌓아놓은 것이 그의 작품
이었다. 네 벽에는 그가 고향 마을의 초원에서 민들레 꽃가루를 채집
하는 모습이 동영상으로 보여지고 있었다.
그 채집은 3년, 4년, 5년 변함없이 지속되고….
꽃가루들은 그가 이승에서 만난 지극히 고요한 속도, 꿈의 이름 들이
었다. 가을 햇빛에 펄럭이는 삶은 기저귀 냄새가 나는 사람…. 맑음과
연민이 결집된 아련한 생의 냄새 속에 한 송이 민들레꽃이 피어난다.
곽재구<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