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는 자유에서 오고 자유는 고독에서 오고, 고독은 비밀에서 오는 것, 사랑하고, 글을 쓰고, 생각하는 일은 모두 숨어 하는 일인데 어디에도 비밀이 쉴 곳은 없다.
이제 거대한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되었구나. 각기 주어진 번호표를 가슴에 달고 부르면 즉시 알몸으로 서야 하는 삶.
혹시 가스실에 실려가지 않을까, 혹시 재판에 회부되지 않을까, 혹시 인터넷에 띄워지지 않을까. 네가 너의 비밀을 지키고 싶은 것처럼
아, 나도 보석 같은 나의 비밀 하나를 갖고 싶다.
사랑하다가도, 글을 쓰다가도, 벨이 울리면 지체없이 달려가야 할 나의 수용소 번호는 016-909-3562.
오세영 (1942~ )
1942년 전남 영광에서 태어나 1968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반란하는 빛』,『가장 어두운 날 저녁에』,『모순의 흙』,『무명연시』등. 한국시인협회상, 녹원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등 수상. <현대시>동인.
그녀(휴대폰)의 울음은 매번 나를 달뜨게 한다. 그러나 술집 나설 때에야 마담의 미소에 깜박 속았다는 것을 아는 것처럼 경청 이후에야 그녀의 간절한 울음이 절박한 사정과 무관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랑을 증오로 갚고 떠나는 연인처럼 언젠가 그녀가 돌변하여 비루하지만 치명적인 생의 비밀 속속들이 누설할는지 모른다. 매번 자지러지게 울지만 그녀가 전해주는 사연이란 추수 끝난 벌판의 검불 같은 것들이 태반이다.
시평:: 이재무 시인
1958년 충남 부여 출생. 1983년 『삶과문학』과 그후 『실천문학』『문학과사회』등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 시작. 시집으로 『섣달 그믐』『온다던 사람 오지 않고』『벌초』『몸에 피는 꽃』『시간의 그물』『위대한 식사』『푸른 고집』등. 난고문학상, 편운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