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는 죽어서도 매를 맞는다 살아서 맞던 채찍 대신 북채를 맞는다 살가죽만 남아 북이 된 소의 울음소리, 맞으면 맞을수록 신명을 더한다
노름꾼 아버지의 발길질 아래 피할 생각도 없이 주저앉아 울던 어머니가 그랬다 병든 사내를 버리지 못하고 버드나무처럼 쥐여뜯긴 머리를 풀어헤치고 흐느끼던 울음에도 저런 청승맞은 가락이 실려 있었다
채식주의자의 질기디질긴 습성대로 죽어서도 여물여물 살가죽에 와 닿은 아픔을 되새기며 둥 둥 둥 둥 지친 북채를 끌어당긴다 끌어당겨 연신 제 몸을 친다
손택수 (1970~)
1970년 전남 담양 출생. 경남대 국문학과, 부산대 대학원 졸업. 199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언덕 위의 붉은 벽돌집」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 시작. 제2회 부산 작가상, 2003년 제9회 현대시동인상, 신동엽창작상 수상. 시집으로『호랑이 발자국』(창비)등이 있다.
이질적인 두 사물 즉 ‘소가죽’ 과 ‘어머니’ 를 연결하는 유사성의 지각으로부터 이 시는 시작된다. 소처럼 가련한 존재가 또 있을까? 살아서는 인간을 위해 자신의 전 노동력을 바치고 죽어서는 부위별로 팔려나가고, 북이 된 가죽은 매까지 맞는다. 이 땅의 남편들이여, 아내를 때리지 마라, 그들은 ‘소가죽북’ 이 아니다. 그들은 위대한 어머니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