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리 이부자리에 초경의 단풍잎만 지더니 차마 지아비도 밝힐 수 없는 저 년, 저 만삭의 보름달
당산나무 아랴 우우우 피가 도는 돌벅수 하나
이원규 (1962~ )
1962년 경북 문경 출생. 1984년 『월간문학』에 「유배지의 풀꽃」을, 1989년 『실천문학』에 연작시 「빨치산 아내의 편지」15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함. 시집으로 『빨치산 편지』(1990) 『지푸라기로 다가와 어느덧 섬이 된 그대에게』(1993), 『돌아보면 그가 있다』(1997) 등이 있다.
초승달이 점차 배가 불러 만월이 되기까지의 시간적 추이를 여인의 임신 과정에 빗대어 노래하고 있는 위 시편은 등줄기를 적시는 찬물처럼 서늘한 기운을 불어온다. 보름달 뜨면 늑대가 벼랑 위에서 운다. 그렇다면 달은 지아비 늑대의 씨를 밴 것인가. 아니면 당산나무 아래 피가 도는 돌벅수(장승)의 씨를 밴 것인가. 우리는 모두 우주의 사생아인지도 모른다고 시인은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