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만 5천 볼트의 전류를 기운차게 뿜어내며 2호선 전동차가 바람을 헤치며 돌진한다. 당산철교 밑으로 푸르딩딩한 강물이 떠가고 당인리 발전소 저켠 치솟는 굴뚝 연기들이 사쿠라꽃처럼 화들짝 꿈틀거리고 있다. 나는 일순, 덜컹이다가 쓰라린 공복을 어루만졌다. 나는 지금 한 마리 낙타로 인생이라는 신기루를 무사히, 잘, 건너가고, 있는가? 옛사랑이 다만 흐릿하게라도 남아 있는 한 세상을 사는 존재의 형식을 되묻지 말아야 한다. 전동차 유리문 너머 오늘 또다시 수타국수처럼 수십 수백 가닥으로 내리쳐질 한 사내의 누리끼리한 얼굴 저리도 점잖게 미소 짓고 있다.
이승철 (1958~ )
1958년 전남 함평에서 태어나 1983년 시 전문무크『민의』제2집에「평화시장에 와서」외 8편으로 등단했다. 시집 『세월아, 삶아』,『총알택시 안에서의 명상』,『당산철교 위에서』와 산문집(공저)『58개띠들의 이야기』를 출간했다.
이승철의 시를 밀고 가는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청춘의 가마솥을 달구어내던’ 오월 광주 이후, 가파른 세월을 거쳐온 그의 시는 아직도 결기를 삭이지 못한 짐승 몇 마리쯤 그리고 있는가 보다. 나는 순치(順馳)되지 않는 그 욕망과 야성이 좋다. 그러니 그에게 세상에 대해 좀 더 온건하게 또는 세련된 투로 말하라고 요구해서는 안 된다. 그는 많인 시인들이 너무 일찍 손 놓고 떠나간 세상을 끌어안고 몸부림치고 있지 않는가. ‘2만 5천 볼트의 전류’가 전차를 몰고 가듯이, 이 절망이 그의 시를 기운하게 밀고 갈 것이다.
- 정희성(시인)
* 이 글은 정희성 시인이 이승철 시인의 시집 『당산철교 위에서』 발간에 부쳐 써주신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