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노래할 때 희망은 메아리친다 희망은 울려퍼진다 스피커는 찢어진다 슬픔에 대해 노래하라 손에 핸드마이크를 하나씩 움켜쥐고 골목 골목 한낮의 단잠을 깨우며 떠들어라 이제 슬프므로 언젠가는 슬프지 않다 국립공원 입구에서 표를 받으며 경포대 해수욕장에서 호각을 불며 탑골공원 벤치의 뒷자리에서 중부도시의 어느 맑은 하늘 아래서 슬픔에 대해 이야기하라 기도하지 마라 노래하라 슬픔에 대해 즐겨라 슬픔, 안아보자 슬픔, 뒹굴자 슬픔 날이 새도록 잇몸 부르트도록 온몸으로 맨몸으로 태워라 슬픔, 태워버려라 어깨동무를 하고 마당을 돌며 재잰잰잰 놋쇠 찢어지도록 놋물 흐르도록 두드려라 슬픔의 꽹과리 그 뒤편에 오는 희망의 메아리까지
박철 (1959~ )
1959년 경기 김포에서 태어나 단국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87년『창비 1987』에「김포」외 15편의 시로 등단했으며, 1997년『현대문학』을 통해 소설가로 데뷔하기도 했다. 주요 시집으로『김포행 막차』『밤거리의 갑과 을』『너무 멀리 걸어왔다』『영진설비 돈 갖다주기』『험준한 사랑』등이 있다.
이 시를 읽노라면 문득 황인숙 시인의「강」이라는 시가 떠오른다.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는지/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빠개질 것 같은 머리에 대해 치사함에 대해/웃겼고, 웃기고, 웃길 몰골에 대해/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당신이 직접/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강가에서는 우리/눈도 마주치지 말자」
황인숙과 박철은 각각의 시에서 고통과 상처의 치유방식에 대해 논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맺음과 이 지상 위에 기쁠 것 하나 없는, 그리하여 때론 미쳐 버릴 것 같은 현실의 배면에 우리가 지금 몸소 살아가고 있음을 암시한다. 황인숙은 고통과 상처의 현실에 직면했을 때 이를 치유하기 위해 타인에게 그 고통의 흔적을 토로하기보다는 죽음보다 더 무거운 침묵으로 도도히 흐르고 있는 강을 찾아가라고 권한다. 인생은 어차피 혼자 견뎌내야 한다는 것, 홀로 태어났기에 고독과 상처 그리고 죽음의 그 순간도 홀로 견뎌야 한다는 것을 설파한다. 또한 내가 지금 외로울 때 그 누구도 지금 똑같은 고통의 질량으로 고통 받고 있을 것이니, 저 홀로 강의 침묵으로 견뎌내라고 주문한다. 그에 비하면 박철은 좀더 대타적이며, 적극적인 형식으로 슬픔의 해소방법을 권한다. 자신의 슬픔을 핸드마이크를 들고 스피커가 찢어지도록 타인의 단잠을 깨우며 지상 위로 까발릴 때 그것은 어느새 희망이 되고 만다는 생각의 일단을 보여준다. 슬픔이 제 스스로 친구가 되게끔 어깨동무하고, 골방이 아닌 광장에서 껴안아보고, 뒹굴고, 꽹과리 놋쇠를 두드리듯 서로 즐기며 더불어 이야기하고 노래할 때 나에게 다가온 비극적 딜레마는 머잖아 끝장나리라고 그는 설파한다. 동시대에 살고 있는 동년배 두 시인의 상처의 치유방식, 고통과 절망의 해결방식이 어찌 보면 확연히 다른 듯도 보인다. 그러나 저 스스로가 지금 슬프고 미쳐버릴 것 같은 고통의 현실에 처해 있음을 알고, 깨달은 순간 바로 그러한 확신은 결국 자기 의지에 의해 치유될 가능성이 열려 있음을 박철과 황인숙, 두 시인은 우리에게 보여준다. 고통과 상처를 감당하는 방법― 골방 구석에 앉아 넋 놓고 아무것도 안하는 것보다는 강에게 달려가거나 혹은 탑골공원 벤치 뒷자리에서 자신의 처한 슬픔과 상처를 이야기할 때 그 치유의 길은 반드시 열릴 수 있을 거라는 예감을 이 시는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