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피고 지는 그 사이를 한 호흡이라 부르자 제 몸을 울려 꽃을 피워내고 피어난 꽃은 한번 더 울려 꽃잎을 떨어뜨려버리는 그 사이를 한 호흡이라 부르자 꽃나무에게도 뻘처럼 펼쳐진 허파가 있어 썰물이 왔다가 가버리는 한 호흡 바람에 차르르 키를 한번 흔들어 보이는 한 호흡 예순 갑자를 돌아나온 아버지처럼 그 홍역 같은 삶을 한 호흡이라 부르자
문태준(1970~ )
1970년 경북 김천에서 출생, 고려대 국문과 졸업. 『문예중앙』신인문학상에 시 「처서」외 9편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현재 <시힘> 동인으로 활동. 시집으로 『수련거리는 뒤란』이 있다.
한동안 문태준이라는 젊은 시인이 있어 시를 읽는 일이 내내 즐겁다. 무언가 설익은 듯하면서도 그 울림이 이명처럼 귓전을 맴돈다. 그 유명한 ‘맨발’이라는 시도 그러하거니와 불교적 사유가 시 속에 섣불리 교조화하지 않고, 불경과 현실과 한글이 절묘하게 ‘통정’을 하고 있다. 이것이 문태준 시의 마력일까. 실은 ‘한 호흡’도 불교적 사유의 대표적인 예다. 들숨 날숨의 한 호흡이 살아있음의 전제조건이지만 ‘꽃이 피고 지는 그 사이를/ 한 호흡이라 부르자’는 선언은 예사롭지 않다. 흔히 불가에서는 현생뿐만이 아니라 전생 현생 내생의 삼세를 한 호흡이라 하지만, 이는 아무래도 너무 추상적이지 않은가. 그리하여 문태준 시인은 꽃이 피고 지는 한 호흡으로 시작해 ‘예순 갑자를 돌아나온 아버지처럼/ 그 홍역 같은 삶을 한 호흡이라 부르자’고 새삼 천명한다. 때로 과장되거나 추상적인 불교적 사유 혹은 진리가 지상에 구체적으로 뿌리를 내린다. 이 시가 문태준 시의 출발점이자 바로 시인의 비밀창고이자 그 열쇠다.
2월 '이 아침의 시' 시 소개는 이원규 시인께서 맡아주셨습니다. 이원규 시인의 촌평과 더불어 시의 향기를 만끽하시기 바랍니다.
이원규
1962년 경북 문경 출생. 1984년 『월간문학』에 「유배지의 풀꽃」을, 1989년 『실천문학』에 연작시 「빨치산 아내의 편지」외 15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함. 시집으로 『빨치산 편지』(1990) 『지푸라기로 다가와 어느덧 섬이 된 그대에게』(1993), 『돌아보면 그가 있다』(1997)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