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가던 소주집 영수증 달라고 하면 메모지에 ‘술갑’ 얼마라고 적어준다. 시옷 하나에 개의치 않고 소주처럼 맑게 살던 여자 술값도 싸게 받고 친절하다. 원래 이름이 김성희인데 건강하게 잘 살라고 몸성희라 불렀다 그 몸성희가 어느 날 가게문을 닫고 사라져 버렸다. 남자를 따라갔다고도 하고 천사를 따라 하늘로 갔다는 소문만 마을에 안개처럼 떠돌았다. 어느 하늘 아래 살고 있는지 몸 성히 잘 있는지 소주를 마실 때면 가끔 슬값을 술갑이라 적던 성희 생각난다. 성희야, 어디에 있더라도 몸 성히 잘 있거라
권석창 (1951~ )
1951년 경북 순흥 출생. 안동 교대 졸업, 대구대 대학원 수료 197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벌판에서」당선. 시집 『눈물반응』(1988), 『쥐뿔의 노래』(2005) 간행.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 대구대 겸임교수, 현 경북 영주고 국어교사
만약 성희가 술값이라고 바로 적었다면 시인은 성희를 어떻게 대했을까? 그랬다면 ‘몸성히’는 태어나지도 않았겠지. 세상 사람들은 술값에서 시옷 하나가 빠졌다고 웃고 말 일을 시인이라는 작자들은 그 시옷 하나를 붙잡아 성희를 자기들의 이모나 누이로 모시려고 한다. 그걸 성희는 어떻게 생각할까 모르겠다. 소주는 맑아서 무섭다. 그래서 나는 맥주에 타 마신다. 나도 성희 보고 싶다. 나는 영수증도 필요 없다. 우리나라 성희야 그깟 시옷 하나에 개의치 말고 어디에 있던 몸성히 잘 살아라.
11월 '이 아침의 시' 시 소개는 이상국 시인께서 맡아주셨습니다. 이상국 시인의 촌평과 더불어 시의 향기를 만끽하시기 바랍니다.
1946년 강원도 양양 출생. 1976년 『心象』 신인상으로 등단. 1985년 첫 시집 『동해별곡』 간행. 1989년 두번째 시집 『내일로 가는 소』와 『우리는 읍으로 간다』(1992)『집은 아직 따뜻하다』(1998) 등을 간행함. 백석문학상·민족예술상·유심작품상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