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어도 참는 것 손 내밀고 싶어도 그저 손으로 손가락들을 만지작이고 있는 것 그런 게 바위도 되고 바위 밑의 꽃도 되고 蘭도 되고 하는 걸까? 아니면 웅덩이가 되어서 지나는 구름 같은 걸 둘둘 말아 가슴에 넣어두는 걸까?
빠져나갈 자리 마땅찮은 구름떼 바쁜 새로 생긴 저녁
장석남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인하대 대학원 국문과 박사과정 수료 후 현재 한양여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 시집 『새떼들에게로의 망명』,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등 출간. 김수영문학상, 현대문학상 등 수상.
구월이다. 가을꽃들이 얼굴을 내민다. 연보랏빛 쑥부쟁이와 벌개미취가, 흰구절초가, 붉은 석산이 꽃을 피워내고 있다. 꽃 한 송이가 피기까지의 시간을 생각한다. 봄과 여름과 지난 겨울, 한 송이의 꽃이 건너온 시간들을 뒤돌아본다. 그리움이란 “새로 생긴 저녁” 무렵 같은 것일 게다. 안타까움이라든가 설렘이라던가 혹은 기다림이나 글썽거리는 눈매 같은 것. 메마른 영혼에 한편의 시가 적시며 고여 익어 가는 일 같은 것, 사랑의 시작이 그러할 것이다. 어느덧 머릿결 희끗거리고 바쁘게만 달려온 자신의 삶이 뿌연 거울처럼 들여다보여질 때가 있다. 문득 찾아온 가을 같은 것이리라. 떨어지는 낙엽 한 장이 까닭 없이 가슴에 파문을 일으키는 때가 있다. “새로 생긴 저녁”이란 그와 같으리라.
9월 '이 아침의 시' 시 소개는 박남준 시인께서 맡아주셨습니다. 박남준 시인의 촌평과 더불어 시의 향기를 만끽하시기 바랍니다.
박남준 선생님은 1957년 전남 법성포에서 출생, 전주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했습니다. 1984년 시 전문지 『시인』지를 통하여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래, 시집으로 『세상의 길가에 나무가 되어』(1990), 『풀여치의 노래』(1992), 『그 숲에 새를 묻지 못한 사람이 있다』(1995), 『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듣는다』(2000) 등과 산문집 『작고 가벼워질 때까지』(1998) 등이 있습니다. 현재 섬진강이 흐르는 하동의 지리산자락 악양에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