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에서 물방울이 내 얼굴에 떨어졌다 나무가 말을 거는 것이다 나는 미소로 대답하며 지나간다
말을 거는 것들을 수없이 지나쳤지만 물방울-말은 처음이다 내 미소-물방울도 처음이다
정현종
1939년 서울 출생. 연세대 철학과 졸업. 1965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하여 시집 『사물의 꿈』『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세상의 나무들』『갈증이며 샘물인』『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등의 시집 및 시선집 출간. 한국문학작가상·연암문학상·현대문학상·이산문학상·대산문학상 등 수상. 현재 연세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재직 중.
모든 사물들은 몸과 마음이 있다. 내 몸 밖에서 존재하며 나를 마주칠 때면 무어라 소리쳐 그 마음을 내 몸 안으로 공명시킨다. 그 언어는 빛이기도 색이기도 질감이기도 혹은 침묵이기도해서 단번에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 외침의 파동이 조금씩 가라앉을 때면 사물이 몸과 마음을 다하여 내게 왔다 갔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오늘은 폭우다. 힘찬 빗줄기 속 간혹 비명처럼 번개가 친다. 무슨 할 말이 저리 많은지, 게릴라들이다. 그 소리 또한 커서 우주가 멍멍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