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울며 돌아왔다 다그치는 나에게 학교 안 동백나무가 베어졌다는 의외의 대답 망연자실, 묵묵부답 먼 진원지에서 서러움이 괘종시계처럼 똑딱거렸다 아 · 버 · 지
눈썹에 이슬 맺히는 자욱했던 물안개길 불 맞아 웅크린 짐승의 눈빛으로 선홍색 동백은 점점이 반짝였다
눈물 덜 마른 얼굴로 잠든 꽃 그림의 셔츠만 찾는 기르는 고양이와도 얘기를 나누는 식물 같은 아이 나의 아이
세상 젤 서러운 꽃이라던 잠시 한눈이라도 팔라치면 시샘하듯 목을 꺾는 생명 같은, 어린 목숨 같은 꽃이라던 동백 아버지는 흩어진 생명 목숨의 조각들로 목걸이 만들어 날 무등 태웠었다
아이의 꿈속에서 나무는 살아날까 평화로운 잠으로 나도 가고 싶건만 다시 아기가 된 아버지의 응석에 모조청자는 푸른 비명으로 깨어지고
아버지 당신 닮은 저 아이는, 저 아이의 아버지인 나는
홍성식
1971년 부산 출생.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1999년 <노동일보> 문화부 기자로 언론계 활동 시작. 2000년 2월 <오마이뉴스> 창간 기자로 참여한 후 현재까지 문화부 문학담당 기자로 활동 중. 『시경』에 「끝이다, 아니 시작이다」외 3편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 시작. 시집 『아버지꽃』(화남, 2005) 출간.
시의 추(錐)는 시간 위에 머문다. 원시간은 본디 ‘우로보로스’적 자기회귀요, 재출발이다. ‘끝을 만나지 못함’은 도리어 ‘흰 새의 눈부심이 바로 끝임’을 알게 하며 그것이 끝없으면서 또한 끝없이 끝이 나는 생명의 비밀임을 깨닫게 한다. 홍성식의 시는 바로 그것의 아름다움 앞에 망연히 서서 ‘누구도 내릴 수 없고 아무도 내려줄 수 없는 망망대해’였던 시간에 저항하던 아버지의 그 전아한 삶의 고집이 사실은 호박 속에조차 살아나 있는 생명의 엄엄한 격조임을 마침내 발견한다. 이 지점이 곧 시인의 ‘이니시에이션 포인트’다. 너무 우아해서 오히려 가슴이 두근거림을 어쩌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