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밤에도 소년들 소녀들 전화를 한다. 오늘밤에도 하늘은 푸르스름하고 해는 떠오르지 않는다. 소년들 소녀들 오늘밤에도 총총하다. 낮에 소년과 소녀는 같이 아이스크림을 먹지 않고, 아이스크림은 햇빛에 녹지 않고, 오늘밤은 아이스크림 같아서 달콤하다. 딸기 시럽같이 성수대교를 흘러가는 자동차들은 어디서 어디서 스르르 녹겠지. 12층 아파트 베란다에서 소년은 전화를 한다. 난 달리지 않을 거야. 달려가서 누군가를 만나고 덜컥, 아빠가 되고 싶지 않아. 난 오토바이족을 동경하지도 않고 여자애를 엉덩이에 붙이고 싶지도 않아. 나는 무섭게 세상을 쏘아보지 않지. 그런 눈빛은 이제 아주 지겨워. 몇 명의 소년 소녀 오늘밤에도 머리를 너풀거리며 추락하고, 그 몇 초에 대해 오늘밤에도 명상하는 소년들 소녀들 전화를 한다. 오늘밤도 쉽게 깊어진다. 우리는 어디서도 만나지 않을 거야. 이렇게 말하면 항상 오늘밤이 아주 달콤해지지. 딸기 시럽같이 성수대교를 흘러가는 자동차들은 어디서, 어디서, 스르르 녹겠지.
김행숙
1970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 국어교육과 및 같은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다. 1999년『현대문학』에 「뿔」 외 4편을 발표하며 시단에 나왔다. 시집으로 『사춘기』(문학과지성사, 2003)가 있다.
사춘기는 가볍고 불안하며, 달콤하면서 위험하다. 사춘기는 도덕이라든가 당위라든가 정의 같은 것을 문제 삼지 않는다. 사춘기는 보수적일 수 없지만, 이곳을 떠나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알 수 없다. 사춘기의 아이들은 완고하게 굳은 채 패턴화된 감정을 가진 저 성숙한 인간들의 조화로운 예절을 따르지 않는다. 그네들은 다행히도, 사회적 초자아를 자신의 자아와 혼동하지 않는다. 바로 이 지점에서, 사춘기는 단순한 소재가 아니라 미학적 출발점으로 승격된다. 이제 시를 쓴다는 것은 윤리학과 온전히 무관한 저 사춘기적 ‘경계’에 머문다는 뜻이 된다. 경계에 걸려 흔들리는 이 불안한 감성들은 정확하게 이 시집의 미학을 조준하는 것이다.
* 이 글은 이장욱 시인이 김행숙 시인의 시집 『사춘기』 발간에 부쳐 써주신 글 중 일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