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우리는 돼지를 몰고 냇가에 가기로 했었네 아니라네 그 돼지 발병을 했다 해서 자기의 엉덩짝살 몇 근 베어 보낸다 했네
우린 냇가에 철판을 걸고 고기를 얹어 놓았네 뜨거운 철판 위에 봄볕이 지글거렸네 정말 봄이었네 내를 건너 하얀 무명 단장의 나비가 너울거리며 찾아왔네 그날따라 돼지고기 굽는 냄새가 더없이 향기로웠네
이제, 우리들 나이 불혹이 됐네 젊은 시절은 갔네 눈을 씻지만, 책이 어두워 보인다네 술도 탁해졌다네
이제 젊은 시절은 갔네 한때는 문자로 세상을 일으키려 한 적 있었네 아직도 마비되지 않고 있는 건 흐르는 저 냇물뿐이네 아무려면, 이 구수한 고기 냄새에 콧병이나 고치고 갔으면 좋겠네
아직 더 올 사람이 있는가, 저 나비 십리 밖 복사꽃 마을 친구 부르러 가 아직 소식이 없네 냇물에 지는 복사꽃 사태가 그 소식이네
봄날 우린 냇가에 갔었네, 그날 왁자지껄 돼지 멱따는 소린 들리지 않았네 복사꽃 흐르는 물에 술잔만 띄우고 돌아왔네
송찬호
1959년 충북 보은에서 출생, 경북대 독문과를 졸업했다. 1987년 『우리 시대의 문학』 6호에 「금호강」 「변비」 등을 발표하면서 시단에 등장했으며 시집으로 『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 『10년 동안의 빈 의자』 『붉은 눈, 동백』 등이 있다.
마흔에 이른 중년들 몇이 봄날 냇가로 놀러갔다. 철판에 고기가 구워지고, 나비가 날아오고, 냇물 위에는 복사꽃이 흐드러지게 날린다. 그런데 어쩐지 유쾌해 보이진 않는다. 노랫소리도 없고 장단도 없다. 그렇다고 쓸쓸한 분위기도 아니다. 쓸쓸해하기에는 봄볕이 너무 따뜻하고 돼지고기 냄새도 향긋하기만 하다. 그러나 아무튼 분위기는 고조되지 않는다. 그렇지, 다들 한 세월 건너온 까닭이겠고, 추억이 많으니 잊혀진 것도 많겠고, 돌아가면 기다리는 이 많겠고, 기다리지 않는 이도 많겠고, 아무려나 말없이 그냥 지그시 바라보는 맛도 이제는 아는 것이다. 멀리서 볼 땐 건달들 야유회인 줄 알았는데, 가까이 가 보니 무명의 가장들이 고기 몇 점 먹는 자리다. 그러니 시비 걸지 말고 모른 체 해주자. 잠시만 자기들끼리 저 봄날 다 가지도록 해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