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들은 어디로 갔나 하면 된다 인자무적과 함께 범선들 어디로 떠 갔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와 함께 푸시킨과 함께 희수 아버진 어디 가 사나 이발소 닫아걸고 고깃밸 탔나 이발소 집어치우고 수리울 갔나 수리울 돌아가서 키워봐야 돈도 안 돼 먹어버리고 고기도 안 돼 묻어버리기도 하는 돼지나 치나 정말 풍랑에 속고 해일에 속으며 선주에 속고 과부에 속으며 배라도 타나 정말 미닫이 열면 장마당 훤히 내다뵈던 때절은 통걸상에 올라앉으면 옥좌에 앉은 기분이던 쇠전 나온 칠용아재 일본사람처럼 박박 깎고 가던 읍내 이발소 돼지들 어디로 갔나 콜롬부스나 마젤란의 배 같은 범선들 어디로 떠 갔나 희수 아버진 어디 가 사나
윤제림
1959년 충북 제천 출생. 동국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으며, 1987년 『문예중앙』에 시 「뿌리 깊은 별들을 위하여」 외 9편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으로 『삼천리호 자전거』(1988), 『미미의 집』(1990), 『황천반점』(1994), 『사랑을 놓치다』(2001) 등이 있다.
시의 맛도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지만, 그 중의 첫째…가 아니라면 둘째…도 아니라면 셋째까지는 죽어도 양보 못 할 것이 운율의 맛이겠다. 말이 노래가 되고 바람이 되고 춤이 되고 강물도 되는 가락의 흥 그런 거. 이 시는 그런 운율의 맛이 우선 보통 아니다. 갔나, 갔나, 해 가면서, 정말, 정말, 해 가면서, 푸념하듯 하소연하듯 추억의 형상들을 툭툭 읊조리는데, 그 가락이 저절로 몸에 들어와 내 한숨이 되고 내 노래가 되고, 흥흥거리며 그렇게 따라가다 보면 촌 이발소의 저 남루하고도 정겨운 풍경들이 알싸하게 가슴을 적신다. 희수 아버진 과연 어디로 갔을까? 돼지나 치나 정말, 배라도 타나 정말, 지난날 이렇게 저렇게 부대껴 지내던 그만그만한 인연들이 죄다 갑자기 그리워지는 것이다. 산다는 건 이렇듯 사소한 것들에 느닷없이 목이 메이는 일일 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