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산소 가는 길에 밤나무 아래서 아빠와 쉬를 했다 아빠가 누는 오줌은 멀리 나가는데 내 오줌은 멀리 안 나간다
내 잠지가 아빠 잠지보다 더 커져서 내 오줌이 멀리멀리 나갔으면 좋겠다 옆집에 불 나면 삐용삐용 불도 꺼주고 황사 뒤덮인 아빠 차 세차도 해주고
내 이야기를 들은 엄마가 호호호 웃는다 - 네 색시한테 매일 따스운 밥 얻어 먹겠네
시집 『벙어리장갑』 (2002년 문학사상사)
오탁번
1943년 충북 제천 출생, 고려대 영문학과 및 동 대학원 국문학과 졸업. 문학박사. 현재 고려대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 196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화, 196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 1969년 '대한일보' 신춘문예 소설로 등단. 소설「우화의 땅」으로 '한국문학작가상', 시집「겨울강」으로 '동서문학상', 시「백두산천지」로 '정지용문학상' 수상. 시집「아침의 예언」「너무 많은 가운데 하나」「생각나지 않는 꿈」「겨울강」「1미터의 사랑」, 소설집으로「처형의 땅」「저녁연기」「겨울의 꿈은 날 줄 모른다」「순은의 아침」등.
아빠 오줌줄기는 힘차고 아이 오줌줄기에서는 생기가 돈다. 참 따듯한 풍경이다. 풍경이 눈에 선하다. 아이야 네가 커서 네 아들과 함께 아비 산소 가는 길에서, 그 밤나무 아래서 아들과 쉬를 해보렴. 손으로 만져보고 싶은 참 따듯한 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