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다 저건 동으로 가는 바람더러 같이 가자고 같이 가자고 갈대가 머리 풀고 매달린 상처다
아니다 저건 바람이 한사코 같이 가자고 손목을 끌어도 갈대가 제 뿌리 놓지 못한 채 뿌리치고 뿌리친 몸부림이다
모질게도 입춘 바람 다시 불어 누운 갈대를 더 누이고 있다 아니다 저건 갈대의 등을 다독이며 떠나가는 바람이다
아니다 저건 어여 가라고 어여 가라고 갈대가 바람의 등을 떠미는 거다
-『사람의 문학』2004년 여름호
안상학
1962년 경북 안동 출생. 198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1987年 11月의 新川」 당선. 시집으로 『그대 무사한가』, 『안동소주』, 『오래된 엽서』가 있다. 현재 안동에서 살며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 경북작가회의 부회장, 안동민족문학회, 안동수필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생명이란 덩어리는 상처와 몸부림의 총화다. 매달리기도 하고 뿌리치기도 하며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명은 단독자가 아니다. 내미는 손길과 뿌리치는 손목, 거기에 온기가 서린다. 거기에 입춘으로 가는 봄바람이 있다.
모진 게 생이지만, 모질기 때문에 다독임이 있고 등을 토닥이는 억센 손도 있는 것이다. 갈대는 다시 홍수와 바람의 상처로 몸부림칠 것이다. 그 위로 가을이 오고 흰 눈 다독다독 내릴 것이다. 그 모진 시간에도 새와 들쥐들은, 그 갈대밭에 보금자리를 틀 것이다. 생은 둥우리에서 나와 둥우리로 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