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나무 저도 소식이 궁금한 것이다 그러기에 사립 쪽으로는 가지도 더 뻗고 가을이면 그렁그렁 매달아놓은 붉은 눈물 바람결에 슬쩍 흔들려도 보는 것이다 저를 이곳에 뿌리박게 해 놓고 주인은 삼십년을 살다가 도망 기차를 탄 것이 그새 십 오년인데…… 감나무 저도 안부가 그리운 것이다 그러기에 봄이면 새순도 담장 너머 쪽부터 내밀어 틔워 보는 것이다
- 시집 『몸에 피는 꽃』, 창작과비평사
이재무
1958년 충남 부여 출생. 한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동국대 국어국문학과 석사과정 수료. 1983년 『삶의 문학』과 그 후 『실천문학』『문학과 사회』등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 시작. 저서『섣달그믐』『온다던 사람 오지 않고』『벌초』『몸에 피는 꽃』『시간의 그물』『위대한 식사』『푸른 고집』등. 제2회 난고문학상 수상, 제19회 소월시문학상 우수상. 추계대, 청주과학대, 한남대, 한신대 대학원 등에서 시창작 강의. 계간 시 전문지 『시작』편집주간.
울안에 감나무 한 그루가 있다. 집은 텅 비어 있다. 폐가인 것이다. 주인은 무슨 일인가로 밤 기차를 타고 고향을 등졌다. 그러니 헛간이며 마당에는 살림살이들이 고스란히 나뒹굴고 있으리라. 언젠가는 돌아올 것이라고, 매년 까치발을 돋우고 있는 울밑 봉숭아의 무릎관절이 퉁퉁 부어 있으리라. 우리나라의 집들이 동남향을 하고 있으니 감나무 가지가 사립 쪽으로 가지를 뻗는 것이 생태적으로 당연하겠지만, 감나무는 안타까움으로 새순을 피우고 간절한 기다림으로 붉은 눈물의 홍시를 매단다. 좋은 시는 그림이 잘 그려진다. 풍경에 두께가 깊고 그늘이 묵직하고 등골을 타고 오르는 서늘함이 있다. 폼 나게 낙관이 찍혀있는 게 아니라, 사람의 발자국이 있다. 이 시를 읽고 나면, 좋은 시 한편이 갖고 있는 울렁임이 얼마나 큰 것인지 새삼 느끼게 한다.